독서 기록, 이것 하나만 바꿨더니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출처:픽사베이(Pexels)

독서 기록을 시작하고 포기하기를 다섯 번은 반복했다. 다이소에서 예쁜 노트를 사고, 유튜브에서 독서 기록 방법을 찾아보고, 양식을 만들어 첫 페이지를 정성껏 꾸몄다. 처음 두세 권은 열심히 채웠다. 책 제목, 저자, 읽은 날짜, 별점, 인상적인 구절, 내 생각, 한 줄 요약까지. 그러다 어느 순간 밀리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기록하려고 앉으면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기록이 숙제가 됐다. 두 권이 밀리고, 세 권이 밀리면 "이미 너무 밀렸으니 나중에 몰아서 써야지"가 됐다.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앱도 써봤다. 독서 기록 전용 앱을 깔고 책 표지를 스캔하고 별점을 매겼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처음엔 뿌듯했다. 한 달쯤 지나니 앱을 열기가 귀찮아졌다. 무언가를 매번 입력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장벽이 됐다.

독서 기록이 안 되는 진짜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다섯 번을 포기하고 나서야 이유가 보였다. 형식이 문제였다. 내가 만들어 놓은 양식이 채워야 할 칸이 너무 많았다. 그 칸을 채우려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또 한 번의 에너지가 필요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과 기록하는 것이 별개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완벽주의였다. 한 권이라도 빠뜨리면 기록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강박이 생겼다. 독서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기록을 어렵게 만들었다. 뭔가 의미 있는 말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그냥 "재밌었다"라고 쓰면 너무 허술한 것 같고, 깊은 감상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잘 안 됐다.

형식을 버리기로 했다

여섯 번째 시도에서 딱 하나만 바꿨다. 양식을 없앴다. 채워야 할 칸도, 반드시 써야 할 항목도 없앴다.

대신 규칙을 하나만 만들었다. 책을 읽다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를 꺼낸다. 노트 한 페이지를 세로로 반 나눠서, 왼쪽엔 책에서 건진 내용을 내 말로 짧게 쓰고, 오른쪽엔 그것에 대한 내 반응을 쓴다. 그게 전부다.

처음에 이 방식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너무 허술한 것 아닌가 싶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정리하는 게 아니라, 읽는 중간에 끊어가면서 쓰는 방식이라 흐름이 깨질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달랐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멈추게 됐고, 그 멈춤이 읽는 속도를 조절해줬다. 수동적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읽게 됐다.

실제로 이렇게 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다가 "정체성 기반 습관"이라는 개념에서 멈췄다. 왼쪽엔 이렇게 썼다. "목표가 아니라 정체성부터 정해야 한다. 운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다'라고 먼저 정의해야 한다." 오른쪽엔 이렇게 썼다. "나는 독서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차이가 습관의 지속성에 영향을 줬던 것 같다."

이 두 줄이 나중에 그 책을 다시 꺼냈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됐다. 책의 핵심 내용과 당시 내가 뭘 느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책 한 권에 이런 메모가 두 개밖에 없는 날도 있다. 반대로 어떤 책은 다섯 페이지를 쓴 날도 있다. 억지로 맞추지 않는다. 많이 걸린 날은 많이 쓰고, 그냥 술술 읽힌 날은 적게 쓴다. 그래도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방식으로 3년째 이어오고 있다. 노트가 다섯 권째다. 예전처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록을 빠뜨린 날이 생겨도 죄책감이 없다. 어제 읽은 책에서 아무것도 안 걸렸다는 뜻이니까. 죄책감이 생길 구조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3년치 노트를 가끔 다시 펼쳐본다. 그때 읽던 책이 뭐였는지보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보인다. 2년 전의 나는 이걸 이렇게 받아들였구나. 지금의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그 변화가 보이는 것 자체가 재밌다.

예전 방식으로 쓴 독서 기록은 나중에 펼쳐봐도 "그래서 내가 이 책에서 뭘 느꼈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잘 채워진 양식이지만 내가 없었다. 지금 방식은 다르다. 오른쪽 칸에 내 반응을 쓰기 때문에, 그 기록이 그냥 책 요약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

독서 기록을 여러 번 시도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형식부터 버려보는 것을 권한다. 채워야 할 칸이 많을수록 지속하기 어렵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딱 두 줄. 책에서 건진 것, 그리고 내 반응.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완벽한 기록보다 꾸준한 기록이 낫다. 꾸준하려면 가벼워야 한다. 가볍게 시작하면 생각보다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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