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AI 이미지 생성 (Gemini/ChatGPT)
잠들기 전 습관이 영 좋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패턴이 몇 년째 이어졌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친절하게도 끝없이 다음 영상을 제안해줬고, 12시에 누웠다가 새벽 2시가 되는 날이 많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하고, 피곤하니까 저녁에 또 유튜브로 쉬고, 그 사이클이 반복됐다.
바꿔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유튜브를 끄고 나면 뭘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냥 누워있으면 잠이 안 왔다. 그러다 시도한 것이 침대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맞았다.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무거워졌다. 스마트폰 화면과 달리 눈을 자극하지 않으니 뇌가 각성되지 않고 수면 모드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잠자리 독서에는 조건이 있다. 너무 재밌으면 안 된다. 새벽까지 읽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 무거워도 안 된다. 생각이 많아져서 잠이 안 온다. 짧은 단위로 끊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조건으로 고른 책들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잠자리 책으로 추천하면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두껍고 내용이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챕터가 짧고 독립적이다. 한 챕터가 10~15분이면 읽힌다. 잠들기 전 챕터 하나만 읽어도 완결감이 있다.
내용도 잠들기 전에 적합하다.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라 일상과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생각할 거리가 생기는데, 자극적이지 않다. 불안이나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감긴다. 나는 이 책을 두 달에 걸쳐 잠들기 전에 조금씩 읽었다. 그 방식이 오히려 내용을 더 잘 소화하게 해줬다.
어떻게 살 것인가 — 몽테뉴 수상록
16세기에 쓰인 글이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 인간이 고민하는 것들이 수백 년이 지나도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에세이 형식이라 어디서 끊어 읽어도 된다. 챕터마다 분량이 다르니 그날 컨디션에 따라 짧은 것, 긴 것을 골라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잠들기 전에 잘 맞는 이유는 읽고 나서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 조급함을 주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다. 불안을 키우지 않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채식주의자 (한강)
소설은 잠자리 독서에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궁금해서 새벽까지 읽게 될 것 같아서. 그런데 한강의 소설은 달랐다. 분위기가 무겁고 속도가 느리다.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오히려 안 맞는다. 그 느린 속도가 잠들기 전에는 오히려 잘 맞는다.
문장이 아름다워서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세 개의 중편이 연결된 구조라 한 편씩 끊어 읽기도 좋다. 유튜브를 보다 잠들던 때보다 훨씬 깊이 잠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건 이 책을 침대에 두고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잠들기 전 독서를 시작하려면 특별한 책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읽는 책을 침대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핸드폰 대신 책을 집어 드는 그 하나의 선택이 수면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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