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다가 저녁을 먹고, 유튜브를 보다가 잠드는 패턴이 몇 년째 반복됐다.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바꾸지 못했다. 의지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아침 루틴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고 독서하고 명상까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데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머리가 돌아가는 타입이었다. 아침 루틴을 따라 하려다 수십 번 실패한 뒤에야 깨달았다. 나에게 맞는 건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었다.
무기력한 저녁의 원인을 먼저 찾았다
저녁마다 무기력한 이유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첫째, 퇴근 직후의 전환이 없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장소는 바뀌었지만 뇌는 여전히 일 모드였다. 그 상태에서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려 하니 당연히 안 됐다. 뇌가 쉬고 싶은데 억지로 앉혀놓으니 저항이 생겼다.
둘째, 저녁을 그냥 흘려보냈다.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스마트폰이 그 공백을 채운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그렇게 된다. 계획 없는 저녁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대로 흘러간다.
셋째, 목표가 너무 컸다. 저녁에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공부도 하려니 처음부터 압도됐다.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다.
퇴근 후 20분 전환 루틴
가장 먼저 바꾼 것은 퇴근 직후 20분이었다. 집에 오면 바로 스마트폰을 보거나 소파에 눕는 대신, 20분짜리 전환 의식을 만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끓이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딱 이 세 가지다. 이 20분이 일 모드에서 저녁 모드로 바뀌는 스위치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이 루틴이 자리 잡고 나서 저녁이 확연히 달라졌다.
뇌에게 이제 일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신호가 있어야 뇌가 회복 모드로 전환되고, 회복 이후에야 다시 뭔가를 할 에너지가 생긴다.
저녁 루틴은 딱 하나만
전환 루틴 이후에는 저녁에 할 일을 딱 하나로 제한했다. 처음에는 독서 20분만. 운동이나 공부 같은 건 넣지 않았다. 하나만 지키는 것이 목표였다.
한 달 동안 저녁 독서 20분만 지켰다. 생각보다 잘 됐다. 왜냐하면 딱 20분이라는 게 소파에 누워있는 것보다 조금만 더 의지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시간짜리 계획이었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두 달째부터 운동 10분을 추가했다. 격렬한 운동이 아니라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맨몸 운동이었다. 세 달째에는 그날 있었던 일을 세 줄로 일기 쓰는 것을 추가했다.
지금의 저녁 루틴은 전환 의식 20분, 독서 20분, 가벼운 운동 10분, 세 줄 일기 쓰기다. 총 한 시간이 채 안 된다. 劇적으로 거창하지 않지만, 저녁이 내 것이 됐다는 느낌이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진 것이다.
저녁 루틴이 아침을 바꿨다
예상치 못한 변화가 하나 있었다. 저녁 루틴이 자리를 잡고 나서 아침이 달라졌다. 전날 밤을 알차게 보냈다는 느낌이 다음 날 아침의 기분에 영향을 줬다. 어제 뭔가 했다는 사실이 오늘을 시작하는 태도를 바꿨다.
저녁을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날과, 20분이라도 책을 읽고 잠든 날의 다음 아침은 분명히 다르다.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아침 루틴이 안 된다고 포기하기 전에, 저녁 루틴을 먼저 시도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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