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상호 호혜성의 메시지 — 《The Serviceberry》에서 《향등골나물 땋기》까지

출처 : AI 이미지 생성(Gemini)

당연하게 여겨온 '받음'에 대하여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을 '소비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까요? 마트의 신선식품 코너에 정갈하게 포장된 과일을 보며 우리는 그 이면에 숨겨진 대지의 땀방울과 햇살의 밀어를 읽어내지 못하곤 합니다. 그저 가격표에 적힌 숫자를 지불하면 당연하게 소유할 수 있는 '재화'로 인식할 뿐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던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의 《The Serviceberry》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소비 관념에 커다란 균열을 내비칩니다. 시골길 어귀에 흐드러지게 열린 준베리(Serviceberry) 나무는 인간에게 열매를 팔지 않습니다. 그저 아낌없이 내어줄 뿐입니다. 새들이 날아와 쪼아 먹고, 인간이 바구니 가득 담아가도 나무는 결코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대자연의 생태계는 본질적으로 '선물 경제(Gift Economy)'를 기반으로 움직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무조건적인 베톳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그렇다면 "받은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마음속에 피어오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로빈 월 키머러의 사상적 뿌리이자 자연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전작, 《향등골나물 땋기(Braiding Sweetgrass)》의 세계를 함께 거닐며 자연과 인간이 맺어야 할 '상호 호혜성(Reciprocity)'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1. 관계의 시작: 관찰하고, 이름을 부르고, 감사하기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웃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첫걸음이다."— 《향등골나물 땋기》 중에서

현대 사회에서 자연은 대개 '배경'이나 '풍경'으로 소비됩니다. 주말에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며 "경치 좋다"고 말하지만, 정작 길가에 핀 풀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저 우뚝 솟은 나무가 어떤 세월을 버텨왔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키머러는 식물생태학자이자 원주민(포타와토미 족)의 후손으로서, 자연을 관찰하는 행위는 단순한 과학적 조사를 넘어선 '관계 맺기'라고 말합니다.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식물과 동물을 ‘그것(it)’이라는 무생물 대명사로 부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나무와 강, 바위를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대접합니다. 생각을 바꾸어 나무를 물건이 아닌 '누군가'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The Serviceberry》에서 보았던 그 풍성한 열매들은 결코 우연히, 혹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지가 겨울의 혹한을 견디고, 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분을 끌어올리며, 해와 바람이 협력해 만들어낸 기적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호혜성의 첫 단계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깊은 감사를 표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아침에 피어난 꽃 한 송이에 눈길을 맞추고, 그 존재 자체에 고마움을 느끼는 작은 시선이 곧 호혜성의 출발점입니다.


2. 시장 경제와 선물 경제의 충돌: 소유에서 공유로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은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에, 경쟁을 통해 소유권을 쟁취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마트에서 과일을 살 때 우리는 돈을 내고 그 과일을 '소유'합니다. 소유한 순간부터 그것은 내 물건이 되며, 남과 나눌 의무는 사라집니다.

하지만 자연의 논리는 전혀 다릅니다. 《The Serviceberry》가 보여주듯, 자연은 '풍요'를 전제로 작동합니다. 준베리 나무는 자신이 가진 열매를 모두 움켜쥐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열려 가지가 부러지기 전에 다른 존재들이 와서 먹어주기를 바랍니다. 만약 아무도 먹지 않아 열매가 땅에 떨어져 썩어버린다면, 그것은 자연의 입장에서 선물의 가치가 훼손되는 일입니다.

《향등골나물 땋기》에서 저자는 향등골나물(Sweetgrass)을 채취하는 원주민들의 엄격한 규칙을 소개합니다.

  • 첫 번째로 발견한 식물은 절대 채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이 된다.)
  •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고, 절반 이상은 남겨둔다.
  • 채취할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하고, 대가로 담배를 대지에 바치며 감사를 표한다.

이 규칙들은 자연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지혜입니다. 사적으로 소유하여 축적하는 것이 미덕인 시장 경제와 달리, 선물 경제에서는 '선물을 계속 순환시키는 것'이 미덕입니다. 자연에게 받은 선물을 나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고, 다시 대지로 돌려보낼 때 비로소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이 유지됩니다.


3. 상호 호혜성: 인간이 자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그렇다면 인간은 자연에게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자연으로부터 파괴자, 혹은 약탈자라는 오명을 써왔습니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이들조차 "인간이 자연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키머러는 이 지점에서 매우 독특하고도 희망적인 원주민의 철학을 제시합니다. "인간 역시 자연 생태계의 유익한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합니다. 향등골나물을 채취할 때, 한 구역은 인간이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자연 방치했고, 다른 구역은 원주민의 방식대로 적절하게 절반 정도를 채취했습니다. 몇 년 후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간이 적절하게 채취하며 돌본 구역의 향등골나물이 아무도 손대지 않은 구역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풍성하게 자라난 것입니다.

  •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자연은 인간의 격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식의 참여'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식물은 인간이 자신들을 알아봐 주고, 정성스럽게 김을 매어주고, 너무 조밀하게 자란 곳을 솎아줄 때 더 잘 자랍니다. 인간이 자연에게 줄 수 있는 보답은 단순히 방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 주의 깊은 돌봄(Attention and Care): 기후 위기 속에서 신음하는 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치유하는 노력.
  • 예술과 찬사(Art and Gratitude):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와 글로 찬미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행위.
  • 절제(Restraint): 나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않고,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용기.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연이라는 거대한 선물에 보답할 수 있는 '호혜적 행동'입니다.


4. 향등골나물을 땋듯이, 우리의 삶을 땋아가기책의 제목인 '향등골나물 땋기'에서 '땋는 행위'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머리카락을 땋거나 로프를 꼴 때, 하나의 가닥으로는 쉽게 끊어지지만 세 가닥을 엮으면 단단해집니다. 키머러는 우리가 세 가지의 지혜를 하나로 땋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향등골나물의 세 가닥 = 전통적인 원주민의 지혜 + 현대적인 과학적 지식 + 자연에 대한 정서적 평화와 사랑

현대 과학은 식물의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분석하지만 마음(사랑)이 빠져 있기 쉽고, 원주민의 신화는 아름답지만 현대 사회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정량적 도구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에 자연을 향한 종교적 수준의 경외감과 감사가 더해져 촘촘히 땋아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지구라는 행성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The Serviceberry》가 우리에게 던진 화두, 즉 '선물로서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의 일상을 이 땋은 머리처럼 촘촘하고 단단한 호혜성의 관계로 채워나감을 뜻합니다. 내가 먹는 한 끼의 식사, 내가 쓰는 종이 한 장에 깃든 대지의 노고를 기억하고, 그만큼 내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선한 영향력을 환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대지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질문

로빈 월 키머러의 글들을 읽고 나면, 집 앞마당에 피어난 잡초 하나, 가로수의 나뭇잎 하나도 예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뿜어내며 우리에게 숨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부모처럼, 대지는 인간의 수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년 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어냅니다.


이제 대지가 우리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나는 너에게 이 모든 풍요를 대가 없이 주었다. 너는 오늘, 나에게 그리고 너의 이웃에게 어떤 선물이 되어주겠느냐?"


소유와 결핍의 피로한 질주를 잠시 멈추고, 자연이 가르쳐 준 상호 호혜성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우리가 자연을 돌볼 때 자연도 우리를 돌본다는 이 오래되고도 신비로운 진리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도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한 가닥의 향등골나물처럼 따스하게 땋아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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